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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문화칼럼] 가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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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10-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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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서유진가을 하늘은 푸르고 더없이 맑았다. 그러나 따스한 햇살도 푸르른 하늘도 그녀의 번민을 걷어내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남편 때문이었다. 고뇌와 갈등에 짓눌린 날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하나님께서 정말 남편을 구해 주실까. 그녀는 의심하면서도 하나님, 저를 기억하소서, 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때 마귀가 속삭였다.

  "왜 하나님이 너에게 이런 불행을 주는지 아느냐. 넌 너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씻기어졌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 하나님을 믿고 난 후에도 넌 끊임없이 죄를 범하지 않았느냐. 네가 죄 값을 받는 것이다."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요. 저는 죄인이에요. 하지만 어느 한순간도 제가 죄인이라는 사슬에서 풀려난 적이 없었어요. 늘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고 지난 날 기적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그런데 또 이렇게 저를 곤경에 빠뜨립니까. 왜 또 저입니까?"

  어떤 역경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지팡이로 바위를 세게 치는 불경을 저질러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릎을 꿇었다. 왜 저입니까, 라니! 불과 일 년 전에 받은 은총을 잊어버리고 불경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자 뜨거운 불이 정수리에 떨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머리를 조아렸다. 용서를 빌며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구했다.

  남편의 병은 식도정맥류 파열이었다. 피바다가 된 욕실 바닥에 쓰러진 남편을 응급실에 옮기자 양동이로 붓듯 쏟아내던 피, 끝없는 수혈, 파열된 식도의 모든 혈관… 가망이 없었다. 그녀는 임종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온 가족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임종기도를 하고도 남편은 숨을 거두지 않았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회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암과 간경화에 간암이었다. 먼저 종양을 제거했다. 간이식만이 살 길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그녀는 부르짖었다. 하나님, 저는 가난합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녀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지친 몸을 교회 마룻바닥에 엎드렸다. 잠이 살풋 들었는데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네 것을 주면 되잖니."

  그녀는 두려움에 떨었다. 허약한 자신의 몸으로 수술이 성공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만약 자신이 죽으면 아들은 어떻게 되나,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는 중환자인 남편보다 자신이 살아남아야 할 것 같았다. 오랜 남편 병치레로 사랑을 잊어버린 줄 그녀는 깨닫지 못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며 너를 살리지 않았느냐. 내가 너의 아버지이고 너는 내 딸이 아니냐. 너를 살리겠다. 걱정하지 마라."

  그녀는 자신의 간을 이식하기로 결심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남편의 반대에 부딪쳤다. 자신이 살겠다고 아내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는 성공을 장담하지 않았고 오히려 실패율이 높다며 수술을 꺼려했다. 그녀의 간의 모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끈질기게 애원했다. 이전에 베풀어주신 기적 같은 은혜를 생각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녀는 친정 어머니를 찾아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오래 마음에 새겼다. 아들에게도 유언을 남겼다.

  "아들아, 하나님께서 아빠도 엄마도 살려주실 줄 믿는다. 그러나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하나님께서 엄마가 필요하다면 엄마는 기쁘게 하나님 곁으로 가게 돼. 그러니까 아들아, 아빠 잘 보살펴 드리고 하나님 잘 섬기고 살아야 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녀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교회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수의 교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통성기도를 하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기도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침대 위에 놓인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남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찾으러 다녔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다급한 마음에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찾아주세요. 아멘, 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어떤 정경이 펼쳐졌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연인이 함께 한 추억의 장소, 백사장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연인을 극적으로 만나는 바로 그곳. 그녀는 차를 몰고 감포 바닷가로 달렸다. 등대 아래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남편의 등을 발견했을 때,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님, 주님의 뜻에 맡기옵니다. 저의 몸이 썩어져 새 싹이 나게 하소서."
 
어느 지하철 입구에 가면 남편을 살린 그녀가 있다. 그녀는 메가폰을 들고 이렇게 외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15:12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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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